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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또 다른 세계

야만인을 기다리며

공론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이다 P57

 

그들의 몸을 소유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가? 욕망은 거리감과 분리감이 주는 비애를 동반하는 것 같았다.
그걸 부인한다는 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또한 나는 왜, 내 몸의 한 부분이 불합리한 욕구와 잘못된 기대감과 더불어,
욕망의 통로로서 다른 어느 것들보다 우선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때때로 섹스는 나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인 것 같았다. 나한테 기생해 살면서 제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지고,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이빨로 나의 살에 달라붙어 사는 우둔한 동물인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왜 너를 이 여자.저 여자에게 데리고 다녀야 하지?
네가 다리가 없이 태어나서 그러냐?
네가 나 대신 개나 고양이한테 뿌리를 박고 산다고, 달라질 게 있겠냐 P79

 

어둠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누워 있다 욕망의 근원에 판한 어떤 시각도, 어떤 표현도, 그것이 아무리 반의적인 표현이라 해도,
나를 당황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피곤한 게 틀림없어. 혹은 어떤 말로 표현하든 그건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나의 입술이 움직인다.
소리 없이 말을 만들고 다시 만든다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오직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나에게는 이 마지막 말에 동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움직임이 전혀 없다. 그저 그 말을 응시할 뿐이다.
단어들은 내 앞에서 점점 더 불명료해진다. 그러다가 모든 의미를 잃고 만다 P110

 

일 자체가 너무 실망스럽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자가 있을 때는 여자의 존재 자체가
남자들을 자극하여 성적인 과시를 하게 만들고 우호적인 경쟁을 하도록 했는데,
여자가 가버리고 없는 지금은 사사건건 신경질만 내게 되는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신경질은 자신을 무모한 여행으로 내몬 나를 향한 것이기도 하고, 말을 잘 듣지않는 말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고,
발이 아파 여행을 지체시키고 있는 동료를 향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이 갖고 다녀야 하는 보급품을 향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P128

 

사적인 여행을 하고 온 후 새로운 유형의 야만인-재국수호자들-을 만나고 그는 자유인이다라고 말했다
가끔씩 느껴지는 감정을 제외하면 그녀에 대한 의무가 없었고 변덕에 맞춰 그녀를 그 모든 것을 통튼 존재 혹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그러한 자유 압박감을 느끼는 자유에서 감금을 당함으로써 생기는 자유를 환영하며 그는 자유인이라고 말했고
거기에 영웅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P133

 

어둠이 비둘기의 회색 같은 첫 빛에 자리를 내주는 네모진 환기통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 P135

 

나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놀라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을 빗댄 말이나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함으로써 특정한 답변을 유도하는 방식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맞는 한, 법을 이용할 것이다. 그런 다음, 다른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것이 그 부서가 운영되는 방식이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돌에게는, 법적 절차라는 건 단순히, 많은 수단들 중 하나일 뿐이다 P143

 

영혼을 다루는 일을 해오긴 했지만 그에게는 외과의사가 심장을 다룰 때 생기는 것 이상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P201
나는 위층 창문에서 내 두개골에 총알을 쏴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뜰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안다 P212

 

나는 매트리스에 누워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물보다 더 둔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잔물결도 일지 않고, 무색이고 무취이며,
종이처럼 메마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손발을 놀리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P246

 

우리 안에 범죄적인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우리 자신한테 가해야 하는 법이다 P251

 

나는 생각한다
무엇인가가 내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내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벌써 몇 인치나 쌓여 있다 발꿈치에서 뽀드득뽀드득 야릇한 소리가 경쾌하게 난다
요즘 들어서 다른 많은 경우에 그러한 것처럼 오래 전에 길을 잃었지만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할 길을 따라 계속 옮기는 사람처럼
나는 바보 같은 느낌을 받으며 그곳을 떠난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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