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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또 다른 세계

묵묵(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고병권

세상에 목소리 없는자란 없다
다만 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는 자가 있을 뿐이다 P9

 

밤길 침묵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소리로 가득하고 빈자리에는 온갖 존재들이 넘쳐난다 P10

 

노들야학의 현장인문학에 참여하면서 나는 크게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인문학 공부를 인문분야 지식의 축적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인문학을 인문학자가 쌓아둔 지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지식복지 서비스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복지시설에 위문품 전달하듯이 인문학자가 들고 오는 지식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위화감만 조성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는 좌절은 지식과 정보의 부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조명의 문제이지 사물의 문제가 아니다 P31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인문학을 '희망' 같은 것에서 때어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를 무언가를 위한-그것이 설령 '희망'일지라도- 수단이나 방편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문학 공부에서 '위하여'를 없앨 필요가 있다
10년 전 현장인문학을 시작할 때는 '희망의 인문학을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희망때문에 하는 공부는 '절망에
너무 취약했다.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넘어서야 한다 P32

 

표면의 사상가는 균형을 잡지만 심오한 사상가는 편을 든다
표면적 사상에는 거처가 없지만 심오한 사상은 제 자리를 알아본다 P58

 

민주주의의 관심사는 '데모스의 힘이지만 대의제에서 최대 관심사는 대표의 유능함이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고 우리에게 어떤 힘이 있는가보다 후보들 중 누군지 더 매력적이고 유능한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P84

 

이렇게 막연할 때는 기본적이고 절실한것을 움켜쥐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잘 챙겨 먹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지려 노력하고, 여력이 되거든 애인들을 돌봐야 한다 P85

 

종이와 잉크를 숭배하는 이들로부터 신의 말씀을 지키고자 했던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이렇게 말했다.
'선을 추구하는 신'보다 '무심한 신'이 진리에 가깝다고, '선에 대한 제멋대로의 규정을 '신'에게 덮어씌우느니
그런 것에 무심한 신이 차라리 신에 가깝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Epikuros)도 그렇게 말했다.
진정 불경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신에게 덮어씌우는 사람들이라고, 신을 자신들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사람들 말이다.
요즘 성소수자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듣고 있다 보면 6000년 전 빚어져서 에덴동산 밖으로 한번도 나가본 적 없는 사람들을 만난 느낌이다 P90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수용서는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평소 질병처럼 영혼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가 일이 터지면 삼단논법의 대전제처럼 기능하는 인식이 있다. 대부분 근거 없는 선입견인지라 보통 때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면 해당 인식이 자극을 받는다.
우리의 이후 생각과 행동은 모두 거기서 도출된다. 이를테면 영혼 밑바닥에 '이방인은 적이다는 인식을가진
사람은 어떤 두려운 사건을 겪었을 때 이방인들을 가 둘 죽음의 수용소를 쉽게 추론해낸다
사건의 충격파가 그 인식의 나뭇가지를 잠시 흔들기만 하면 된다 

영혼 밑바닥에 심어져 있는 인식의 나무가 건재하는 한 수용소는 언제든 시공 허가만을 기다리는 건물과 같다.
그 죽음의 수용소를 낳은 문장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전혀 시들지 않았고, 요즘에는 또다른
소수자들을 거명하는 온갖 위험한 문장들이 봄날의 홀씨들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그것이 우리 영혼의 밑바닥에 안착할 날을 기다리며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P94

 

자신의 무능을 상대방의 무능으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그러나 테일러가 힘주어 강조했듯이,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존재란 없으며 단지 듣지 못하는 존재, 듣지 않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존재로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들은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들을 수 있는가이다 P112

 

이런 상품관계의 근간에 소유관계가 있다. 근대적 소유권의 핵심은 처분권이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은
내 곁에 있어도 소유한 게 아니다. 반대로 처분권만 있다면 나는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땅조차 소유할 수가 있다. 내가 사물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것을 쓰거나 양도하거나 내다 버릴 권리를 가졌다는 뜻이다.
쓰고 버리든 내다 버리는 내 맘이다. 그래서 소유권이란 쓰레기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다.
소유를 도둑질이라고 했던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ere Joseph Proudhon)의 말을 흉내 내자면
소유란 얼마간의 쓰레기다 P118

 

모든 주인은 한때 손님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정적으로 이방인이라는 것
그러므로 이방인을 배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려하는 일이라는 것
우리 존재의 일부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의 안위를 걱정하고 우리의 빵을 움켜쥐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흔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존이 있고 사유가 없고 개인이 있지만 인간이 없다 P131

 

우리는 무언가를 감각한 후에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어떤 선판단 속에서 그것을 감각한다.
말하자면 동물도감 속 코끼리를 통해서 현실의 코끼리를 보는 것이다 어떤 것을 보지만 시대적, 문화적, 생물학적 안경을 낀 채로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각하는 현실은 특정한 감각, 특정한 미학을 통해 포착된 현실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런 상투적 현실을 넘어서려고 했다. 이 점에서 이들은 초현실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우리의 상투적 현실이야말로 비현실이며 초현실임을 보여준다.
진정한 현실이 따로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의 현실만이 진정한 현실인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이란 특정 감각에 기초한 특정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모든 현실은 비현실이고 초현실이다.
뒤집어 말하면 초현실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전정한 현실이 아니라 다른 현실이다 P178

 

인간이 죽음이라는 삶의 비극성을 보지 않고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희망이란 미래를 보며 갖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없는 맹목에서 나오는 것이다
희망이나 절망이나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그것들이 모두 내 결핍을 메우려는 맹목적 시도에서 나오는 한에서
말이다
민주주의의 가르침은 그것이 인류에게 나타난 이 후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왕에게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말라. 그에게는 단지 책임만을 물어라. 힘은 바로 당신에게 있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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