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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눈물.희망1g

지난 가을을 기억하며

높고 파란 하늘 굽이굽이 청회색을 품은 능선과 같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그곳을 아시나요
남쪽 장흥의 천관산
그곳의 바람과
산물결과 바람을 따라서 흔들리는 그곳의 억새무리

그 곳에 가야만 깃드는 정신이 있다 이미지 연상이나 기억만으로는 깃들고자 하는 정신이 표면적으로 그칠 수 밖에 없고 깊은 단계로 내려가기가 어렵다
일정시간이 흐르고 일상의 반복에 심드렁해질 때 생생하게 살아있는 무언가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폴폴 올라오면 나는 베낭을 꾸려 그곳에 올라 그저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다 그저 조용히 강하게.
나에게는 그런 장소가 몇군데 있다 흐린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을 만나는 장소

소리를 내며 몰아쳐 온 바람은 억새를 떠나지 않는다
키 큰 하얀 억새 사이로 머물며 확연히 돌아다닌다 억새와 바람이 있는 넓은 분지에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 떠나가지만 바람은 억새를 떠나지 않으며 나를 떠나지 않는다 늦가을 억새가 바람에 물결칠 때 그곳의 바람은 나를 만들고 그해 가을 분지를 새로이 만들며 두번 다시 볼 수 없는 먼저 떠나가버린 사람들을 불러 일으킨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억새 위로 어머니가 바람에 실려온다 오래 전에 병고로 검은 눈물을 남기신 아버지가 떠나가신 후 어머니는 외로워하셨다 어머니의 아이들이 짝을 찾아 떠난 후 무척 외로워지신 어머니가 바람에 실려온다 어머니에게 미안한 날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바람은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는 바람이 된다
억새를 떠나지 않는 바람은 나를 에워싸고 살아 생전의 향을 날리고 새로운 어머니를 만들어준다
미소는 보이지 않지만 어머니는 한결 시원하고 세차보인다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흔들고 과거를 불러들여 흔들어버리고 바람의 거센 향을 뒤섞어 놓는다 무거운 마음의 더깨를 날려버린 후 덩달아 미래도 흔들어 다시 자리잡는다
바람은 머리카락을 스치며 말없이 조용히 알려준다
스치듯 자유롭게 지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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