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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눈물.희망1g

연필 지우개

연필말고도 편하고 경제적인 도구들이 많지만 나는 글을 쓸 때 연필이 주는 감촉이 좋다 두꺼워 노트에 쓰여지는 글씨가 확연히 보이고 연필심이 주는 감도가 느껴지는 4B연필을 주로 사용한다
하얀 노트에 검은색의 흑연이 글형상을 줄줄 채워져갈 때 글의 길고 짪음과 무관하게 쓱 완결되는 느낌을 준다 종이에 쓸 때 글이 하나하나 노트에 놓여지는 결과 외에도 곁가지처럼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여지의 경로가 남아 계속 따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연필심이 다해 다시 칼로 깎아 심을 다듬는 행위는 거미가 많이 남아있는 듯 거미줄을 천천히 쑥쑥 뽑아내는 것과 같다 글이 만들어지는 경로를 확연히 알 수 없지만 아직 심이 남아있음을 아는 것처럼 쓸 수 있다는 여지가 느껴져 잔잔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책상 앞에는 곱게 깎은 연필이 심이 상하지 않게 과학 실험의 실린더 도구처럼 구멍이 뚫린 나무 연필꽂이에 거꾸로 놓여져있다
'자 쓸 수있어 손을 뻗어 마음에 드는 연필을 집어
연필을 잡고 노트에 써봐'
저장성이 좋고 휴대성이 좋은 모바일에는 쓰기앱 두어개와 메모앱이 설치되어 있어 외출시 글자를 두드려 순간에 찾아오는 느낌을 글씨로 입혀 압정으로 꾹 눌러 저장으로 잡아두기도 하지만 간간히 녹색 정원이 보이는 거실창 앞 식탁에 앉아 연필이 주는 느낌을 받고자 노트를 펼치고 앉는다

정원에 포도 넝쿨 지지대 위에 새 세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다 며칠 전 지금까지 먹어본 자두중에 가장 잘 익은 달디단 자두로 포식을 한 후 걔네들은 이곳에 열매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분명히 이제는 자두나무 옆 제법 잘 익은 복분자를 넘보고 있는 듯하다 자두는 양이 많아 새들에게 양보를 많이 했지만 복분자는 몇 년을 기다려 온 첫수확이라 양보할 수 없다 연필을 들고 보이는 풍경을 적는 순간 새 한마리가 복분자 가지로 옮겨간다 연필을 놓고 쫓으러 나간다
'안돼! 분명 달고도 단 자두로 배를 채운 녀석임이 틀림없어 많이 먹었잔아 이건 안돼!'
새들은 이미 날아가 버린 후이다 복분자 나무 옆 돌을 막대기로 두드려 경고를 주고 뒤따라온 웰시코기 뽀미에게 지키라는 당부를 하고 돌아온다 뽀미는 나를 뒤따라온다 '여기서 지켜' 뽀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귀여운 가시내 너랑 말이 통할 수 있다면 신나겠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다시 보니 새들이 없다

연필로 쓴 내용이다 초고라 다시 여러번 읽은 후 수정을 거치는 동안 연필이 옆에 자리할것이다 지우개와 같이
웹이나 앱은 커서로 위치 후 삭제하거나 통째로 휴지통으로 옮겨가지만 지우개와 같이 남아있는 찌꺼기가 노트 위에 지워진 글과 함께 뭉쳐있다 생각이 글로 바꿈하고 다시 지워져 지우개 찌꺼기로 노트위에 덩그라니 남겨져 아직 휴지통으로 옮기기 전, 지워져버림을 결정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한 단계를 가지고 내 곁에 남아서 많은 수정과 생각을 해야하는 퇴고를 보여주는 사물로 생각케하는 여운을 준다
적합한 단어와 되새겨지는 어감과 동참의 자각의식을 찾는 동안 지우개 찌꺼기가 쌓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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