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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또 다른 세계

식물들의 돌림노래, 야생의 위로


밤새 세차게 내리는 폭우를 보러 나간 마당에는 요란한 개구리 소리와

밤에 꽃이 피는 노란 달맞이꽃이 세찬 비를 맞으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내리는 빗줄기와 어둠이 내려 앉아 가려져 있는 자리한 꽃들 사이로 어두운 빗소리가 번져온다

 

에마 미첼의 식물 하나 하나에 촛점을 맞추어 천천히 보는 그녀의 몸짓은 자연의 조용하며 잔잔한 흐름을 닮았다

내려앉기 그리고 들여다보기의 즐거움을 불러들이고 속도 일시정지하고 잠시 순간멈춤~
그녀가 받는 위로는 그대로 옮겨 흘러들어와 잠시 멈추었던 스위치를 눌러 동력이 되어 정원가꾸는 에너지를 채워준다

그녀의 작은 채집활동은 닮은듯 따라하고 싶어지게 한다

 

나는 밭에 뿌리내리는 모든 잡초에게 일단 기회를 준 다음 나중에 추려낸다 사람들은 우리 정원 곳곳이 엉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나는 여러 식물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오거나 새와 포유동물의 소화기관을 통해서 혹은 중고 염가판매나 무인점포에서 구한 화분에 숨겨져 이곳으로 들어온다

나는 몇주 가끔은 몇달씩이나 잡초 뽑는 일을 그만두었다가 쐐기풀 약간 엉겅퀴 대부분 그리고 최대한 많은 메꽃과 산뱀도랏을 제거한다 자연도 내 방식을 즐기는 듯하다 
식물들의 돌림노래가 이어지게 방치함으로써 나는 무의식중에 다양한 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243

오솔길을 거니는 것은 숲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내 발걸음의 궤적을 더하는 나만의 정신적 만트라와 같다
산책은 차를 끓이는 일상의 사소한 의식이나 털실뭉치로 장갑을 뜨는 일처럼 마음에 위안을 주지만 그 느낌은 매번 다르다
두 계절의 경계에 선 숲은 어름답다 252

 

 

더보기

 

굵은 채로 걸러진 그녀만의 자연을 닮은 잔잔한 언어들과 따라해볼 몇가지들

가을이면 짝짓기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나 역시 이삭 위에서 그들이 펼치는 끈적끈적한 공중군무(짝짓기)를 목격한 바 있다 
그리고 잠자리들의 짝짓기춤을 이 숲의 계절지표 중 하나로 기록해둔다 매년 10월이면 소소한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33
10월의 화살나무 잎은 거의 비현실적인 빛깔을 띈다 대부분은 눈부시게 환한 선홍색과 연한 노란색이 잎맥을 사이에 두고 뚜렷한 줄무늬를 이루기도 하며 아예 무색에 가까운 잎도 있다 35 

식물의 순적한 아름다움에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다 연필과 붓을 집어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소박한 꽃의 형태를 종이에 남기는 고요한 과정이 요란하게 몰아치는 생각을 쫒아낸다  
나는 매년 겪고 있는 계절성정서장애가 올해도 내 뇌신경에서 음침한 홍차처럼 우러나기 시작한건 아닌지 두렵다 바다 가까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신적 어둠을 막아내는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신적 난조 45

정리하고 진열하는 일과 연결된 정신적 경로에 호기심을 느낀다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채집여행후 손에 넣은 잎과 열매 씨앗 견과류와 조개를 처리하던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궁금하다 발견한 것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소위 놀링(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는 것이다 64

수노루의 당당한 태도와 숲속의 상형문자처럼 한 줄로 걸어가는 노루 세마리의 움직임때문에 이 광경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80
새해가 되면1월1일은 일종의 정신적 시금석이 되어준다 85
꽃잎을 닮은 포엽-꽃받침이나 봉오리 주위를 둘러싼 작은 잎 91

식물에 내장된 분자시계가 늦춰지면서
펜랜드 교외에 살게 된 이후 한 해는 내게 꽃들의 연속체로 인식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달아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컨베이어 벨트 103

목련 드로잉 출처gettyimages


갓빨아 넌 리넨이 식물로 변신한 것처럼 상쾌하고도 깨끗한 모습이다104
나무와 울타리에는 황금빛 후광이 내려앉는다 112
식물 내부의 효소가 활성화되면서 여러종이 세포분열을 시작한다 생장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식물학적 지표 하나가 곧 나타나리라는 걸 안다 그 징후를 찾아내는 일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113
우울증을 제어하려면 꾸준한 경계가 필요하다 자연속에서의 산책 창의적으로 보내는 시간 그리고 홀로 있을 때 곁을 지켜줄 호박색 털북숭이 친구라는 방어용 무기를 갖춘 일상적 전투 말이다 116

단절되어 이제는 복구 불가능한 특정 가족관계
겨우 몇 마디 단어로 서술되었지만 하나하나가 내 전두엽에 강철 덤불처럼 복잡하고도 고통스럽게 뒤얽혀 있다 130
고통의 이유를 열심히 찾아낸 후에 기억 하나하나를 마음속 상자에 단단히 쑤셔 넣었다132
날카롭고 쓰라린 기억을 담아 놓은 상자에는 보이지 않는 틈새 확인할 수 없는 구멍이 있어서 이따금 그리로 새어 나온 기억이 내 생각을 물들이곤 한다

서정적이고 덧없는 그리운 노랫소리머릿속에 현란한 색의 불꽃을 터뜨린다 143
뒷마당에 새들의 실시간 생중계 채널이 있다는 생각이 효과적으로 우울함을 쫓는다 148
걸어가는 동안 온화한 날씨와 얼룩덜룩한 나뭇잎 그늘, 아찔하고 다양한 농도의 푸르름과 낙엽과 새싹 블루벨의 향내가 뒤섞여 감각적인 기쁨의 칵테일을 이룬다 166

따뜻한 날씨에 더해 적당한 간격으로 비만 충분히 내려준다면 산울타리는 금세 애매한 신록을 벗어나 무성한 녹음을 이룬다 181
꽃대는 정교한 푹죽처럼 위로 솟구친다
한해가 가을을 향하여 반전되기 전에 생장의 계절을 길게 늘여 온갖 푸르른 풍요로움을 좀 더 편안히 흡수하고 싶다 나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어진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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