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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눈물.희망1g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펌]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전문가들도 ‘공황 상태’라는 표현을 일상처럼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건 서민들의 생활과 마음 상태이다. 조금씩 절약해서 가입한 예금이나 보험이 ‘안전할까?’ 하는 불안 심리까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공황 상태의 근저에는 ‘어떤 결과에 이를지 모른다’는 불안이 깔려 있다. 오늘의 고통도 미래에 대한 정보와 희망이 보장된다면 참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힘든 것이다.

미래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은, 다른 동물에 비해 두뇌가 월등히 발달한 인간의 특성이다. 사람의 두뇌와 관련한 진화론의 핵심은 ‘적응도’이다.

적응력 강한 행동과 사고와 믿음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현재의 적응도 못지않게 ‘미래의 적응도’ 역시 무척 중요하다.

오늘날 경제적 차원에서 미래 적응도를 보장해주는 것이 금융·보험 상품이다. 이는 금융·보험 광고에서 “당신의 미래를 맡기라” 또는 “평안한 노후 생활을 책임진다”라는 문구를 활용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금융·보험 상품의 핵심 키워드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인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금융에 투자하고 보험에 가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의 위기는 곧 생존을 위한 적응력의 위기가 되어 인간 심리의 심연을 건드린다.

인간은 인과율에 따라서 미래 적응력의 정도를 가늠한다. 다시 말해, 원인과 결과, 투자와 성과,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 등, 투여한 에너지와 그것이 이루어낸 것 사이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 우연적 요소가 개입하더라도 ‘그 원인에 그 결과’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으며, 더 나아가 우연적 사건을 인과적 필연 구조에 꿰맞추려고까지 한다.

인간이 세상을 인과율에 따라서 인식하려고 한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사람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이다. 사람에게는 보편적 ‘인식의 방식’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인과율은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든 선험적으로 원인과 결과라는 인식의 방식에 맞추어 대상을 다룬다는 것이다. 인과율적 인식의 방식은 인간에게 내재하며 선험적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인과율을 본능화했다고 설명한다. 즉 칸트가 인간에 선험적으로 내재한다고 한 것을 생물학자들은 진화 과정의 결과라고 본다. 인간의 두뇌가 고도로 발달하는 데에도 인과율적 사고와 행동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발생생물학자 루이스 월포트는,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관련해서 신체에 대한 정신 모델들을 획득하고 이것들이 어떤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지 파악함으로써 행동의 정확도와 계획성을 높여왔다”고 한다. 그 결과 “인간의 진화는 그럴듯한 인과적 믿음을 생성하는 두뇌 메커니즘을 보유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인간에게는 사건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월포트는 인과율적 설명을 위한 일종의 강박은 오히려 다양한 믿음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인과율에 대한 강박은 ‘투자와 성과’라는 금융 경제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위기의 시기에, 인과율적 사고는 강박적 믿음이 된다.

즉 이치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믿게 된다. 우연의 사건들에서 필연의 연결 고리를 강박적으로 찾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돈의 시기에 수많은 ‘필연적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불안해한다. 금융·보험 상품처럼 투자와 성과를 보장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경우, 그 보장의 필연성이 희박한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인과적 믿음은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이제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못되리라’고 믿게 된다. 그것도 인과율에 따라 필연적으로 믿게 된다. 금융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목되는 것들을 꿰맞추어 ‘부정적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금융·보험은 일종의 ‘가상현실’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잘 돌아가면 미래에 ‘실제적’으로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지금 바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적금과 보험은 꼬박꼬박 금액을 적립해야 언젠가 효과를 내며, 주식과 펀드 운용도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실효’를 발휘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실효를 보장하는 가상현실이지, 내 앞에서 바로 효과를 발휘하며 실재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돈’과 연관된 것들의 세계를 ‘실효적 가상현실’을 대하듯 하는 데 익숙해져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긍정적 방향으로든 부정적 방향으로든 인간의 인과적 인식 태도가 뿌리깊게 존재함을 성찰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복잡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현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잘되리라’고 믿든 ‘잘못되리라’고 믿든 인과적 믿음의 절제와 균형을 터득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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